그리운 피터 다니엘스: 밀포드 삶의 기념

사랑하는 뉴햄프셔 주 밀포드 주민이었던 피터 존 다니엘스가 2017년 9월 29일, 5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지역 사회, 특히 Hy-Ten Plastics에서 피터 다니엘스는 단순한 이름을 넘어 신뢰, 기술,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삶을 밝게 비춘 독특한 유머 감각의 상징이었습니다. 그의 부인 태미 렌즈 다니엘스, 자녀 아담과 니콜레트, 그리고 가까운 사랑하는 사람들이 메리맥의 커뮤니티 호스피스 하우스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그의 죽음은 그를 알고 소중히 여겼던 많은 사람들에게 한 시대의 끝을 알렸습니다.

존 “잭”과 캐서린 “키티” (맥엔티) 다니엘스 사이에서 태어난 피터 다니엘스는 가족과 지역 사회에 깊이 뿌리내렸습니다. 그는 데이비드 다니엘스 박사, 토마스 다니엘스, 모린 다니엘스, 마사 다니엘스 홀랜드의 소중한 형제였으며, 각자의 가족과 함께 피터의 넓은 가족 관계를 더욱 확장했습니다. 밀포드와 그 너머의 다니엘스 가족은 형제자매뿐만 아니라 처남, 처제, 조카, 숙모, 삼촌, 사촌까지 포함하여 피터 다니엘스의 부재를 슬퍼했습니다. 그는 또한 밀포드의 벨랑저 가족과 특별한 유대감을 갖고 게일, 노먼, 셰리, 숀을 확장된 가족으로 여기며 혈연관계를 넘어 의미 있는 관계를 맺는 능력을 보여주었습니다.

30년이 넘는 기간 동안 피터 다니엘스는 밀포드의 Hy-Ten Plastics에 헌신했습니다. 그의 동료들은 그를 없어서는 안 될 “해결사”로 여겼으며, 이는 그의 직업 윤리와 문제 해결 능력을 입증하는 증거였습니다. 기계적인 문제든 복잡한 작업이든, 모두가 피터에게 의지했습니다. 그의 헌신과 Hy-Ten 가족에게서 받은 높은 존경심은 특히 말년에 그들이 제공한 실질적이고 정서적인 지원에서 분명히 드러났습니다. 이러한 직업적 헌신은 피터 다니엘스의 정체성의 초석이었습니다.

일을 넘어 피터 다니엘스는 열정적인 낚시꾼이었습니다. 버몬트 주 캐나안의 월리스 호수는 그의 마음속에 특별한 장소로 자리 잡았으며, 여름과 겨울 모험을 위한 평생의 휴양지 역할을 했습니다. 자녀, 조카들과 함께한 낚시 여행, 얼음 낚시 탐험, 보트 타기, 튜빙, 호숫가 식사에 대한 추억은 가족과의 시간과 자연의 소박한 기쁨을 소중히 여긴 남자의 모습을 그려냅니다. 자연에 대한 사랑과 그것을 가족과 함께 나누는 것은 피터 다니엘스의 삶을 더욱 정의했습니다.

그를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은 피터 다니엘스를 끈기 있고 근면하며 매우 재치 있는 사람으로 묘사했습니다. 그는 거의 모든 것을 고치고 만들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의 손은 창조와 수리의 도구였으며, 실용적인 지능과 할 수 있다는 태도를 반영했습니다. “다리 한쪽이 다른 쪽보다 길게 느껴진다면, 아마도 내가 잡아당기고 있기 때문일 거야”라는 그의 말처럼 종종 자신을 낮추는 유머는 어떤 상황에서도 유쾌함과 웃음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이러한 자질 덕분에 피터 다니엘스는 신뢰할 수 있는 개인일 뿐만 아니라 친구와 가족의 삶에 즐거운 존재였습니다.

피터 다니엘스의 삶을 기념하기 위해 10월 4일 수요일 밀포드의 스미스 & 힐드 장례식장에서 조문 시간이 있었고, 목요일에는 밀포드의 성 패트릭 교회에서 기독교 장례 미사가 이어졌습니다. 그의 마지막 안식처는 밀포드의 리버사이드 묘지입니다. 피터 다니엘스를 추모하며 가족들은 그가 받은 동정심 어린 간호를 기리기 위해 뉴햄프셔 주 메리맥의 홈 헬스 & 호스피스 케어, 커뮤니티 호스피스 하우스에 기부를 해줄 것을 제안했습니다.

피터 다니엘스의 삶은 그의 죽음으로 끝맺었지만, 헌신, 기술, 유머, 그리고 깊은 가족애로 가득 찬 삶으로 기억됩니다. 그의 유산은 그를 알았던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영원히 남아 “시간은 변하고 문제는 지나가지만 가족은 영원하다”는 것을 상기시켜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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